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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입법조사처 EU는 기준을 바꿨다, 한국은 숫자만 남았다

-재생원료 산정·검증체계 없이 목표만 확대… 제도 공백 드러나
-종량제봉투 지시 계기, 재생원료 정책을 ‘자원안보 전략’으로 전환해야

 

[환경포커스=국회] 국제 원료 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전쟁과 원유·나프타 가격 급등이 이어지면서 석유기반 플라스틱 공급망의 취약성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종량제봉투에 재생원료 사용을 지시한 것은 단순한 환경정책 차원을 넘어, 원료조달 안정성과 자원안보 문제를 정책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신호로 읽힌다.

 

재생원료 의무사용 제도는 이제 더 이상 탄소 감축이나 폐기물 저감 정책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제 원료 시장의 변동성에 대응하는 산업 안전장치이자, 공급망 리스크를 완충하는 전략 수단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문제는 제도의 방향이 아니라 구조다. 목표는 제시됐지만, 기준은 비어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EU ‘1회용 플라스틱 지침(SUPD)’ 이행결정과 국내 재생원료 의무사용 제도의 정비 과제」 보고서를 통해, 우리 제도의 핵심 한계를 정면으로 짚었다. 보고서는 재생원료 정책의 성패가 ‘몇 퍼센트를 쓰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재생원료로 인정하고, 이를 어떻게 계산하고 검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유럽연합(EU)은 이미 정책의 중심축을 이동시켰다. 지난 2월 SUPD 이행결정을 개편하며, 화학적 재활용과 질량수지(Mass Balance) 방식을 공식적인 재생원료 산정기준으로 편입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인정이 아니다. 재생원료 정책을 목표 비율 중심에서 산정기준·검증체계 중심으로 전환한 구조적 변화다.

 

EU의 새 기준은 명확하다. 화학적 재활용을 인정하되, 연료 사용분은 제외하고 국제표준 기반의 제3자 검증을 의무화했다. 환경적 무결성을 확보하지 못한 재활용은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역외 생산 재생 PET(rPET)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 인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향후 OECD 국가를 중심으로 단계적 인정 구조를 설계했다. 단순한 시장 개방이 아니라, 추적·검증·동등성 확보를 전제로 한 제한적 접근이다.

 

이 변화는 우리 산업에 직접적인 압력으로 작용한다. EU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재생원료 사용 실적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제 제3자 검증과 질량수지 회계 방식이 필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제도는 여전히 목표 수치 중심에 머물러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연간 5천 톤 이상 PET을 사용하는 기업에 대해 재생원료 10% 사용을 의무화하고, 2030년까지 30%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 “무엇을 재생원료로 볼 것인가” “어디까지를 산정 범위로 인정할 것인가” 에 대한 기준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입법조사처는 네 가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첫째, 산정 범위가 불명확하다. 병 몸체뿐 아니라 캡, 라벨, 슬리브 등 구성요소 포함 여부가 정리되지 않아 사업자별 해석에 따라 실적이 달라질 수 있다.

 

둘째, 화학적 재활용과 질량수지 방식의 기준이 없다. 연료 사용분 제외 여부, 공정 손실 처리, 계산 지점 등 핵심 기준이 부재해 제도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셋째, 검증체계가 취약하다. 사업자 자체 자료 제출과 사후 확인에 의존하는 구조로,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독립적 검증 시스템으로 보기 어렵다.

 

넷째, 수입 재생원료의 동등성 기준이 없다. 이로 인해 저품질 원료 유입 가능성과 국내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 문제는 국내 제도 운영을 넘어 수출 경쟁력과 직결된다. 현재 EU는 SUPD를 비롯해 포장재 규정(PPWR),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공급망 실사 지침(CSDDD)까지 연계하며 규제 체계를 확장하고 있다.

 

재생원료 기준은 더 이상 환경 규제가 아니라, 시장 진입 조건이 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이에 따라 네 가지 제도 정비 방향을 제안했다. 핵심은 단순하다. 목표가 아니라 기준을 설계하라는 것이다.

 

재생원료 산정기준을 법적으로 명확히 하고, 화학적 재활용과 질량수지 방식을 조건부로 제도화하며, 수입 재생원료에 대한 동등성 기준을 마련하고, 국내 순환체계 보호와 평가·환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투명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과 Bottle-to-Bottle 체계를 유지하면서, 품질 인증과 전주기 데이터 추적, 주기적 성과평가를 결합한 운영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금의 재생원료 정책은 “얼마나 쓸 것인가”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의 정책은 “무엇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량제봉투 재생원료 사용 지시는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목표 확대가 아니라 기준 설계다.

 

재생원료 정책이 환경정책을 넘어 자원안보 전략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숫자가 아니라 제도의 구조부터 다시 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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