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포커스=국회]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쟁’에 제동을 거는 합의가 국회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대기업의 시장 진입과 중소 재활용업체의 생존 문제가 충돌해온 플라스틱 재활용 현장에서, 경쟁 대신 역할 분담을 명문화한 상생협약이 3년 더 연장됐다.
2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플라스틱 재활용업 대·중소기업 상생협약식」은 단순한 협약 연장이 아니라, 지난 3년간의 실험을 돌아보고 산업 전환기 재활용 시장의 질서를 다시 설정하는 자리였다. 협약의 핵심은 ‘무엇을 하겠다’는 선언보다, 대기업은 물리적 재활용 시장 확장을 자제하고, 중소기업은 기술과 설비 고도화에 집중한다는 명확한 선 긋기에 있다.
‘하지 않기로 한 합의’가 핵심
이번 협약의 핵심은 무엇을 하겠다는 선언보다, 무엇을 하지 않기로 했는지에 있다. 대기업은 대규모 투자와 기술 축적이 필요한 고부가·고품질 재활용 제품, 특히 화학적 재활용 분야에 집중하고, 기존 중소기업이 주력해온 물리적 재활용 시장으로의 신규 진입과 설비 확장을 자제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이다.
반대로 중소기업은 선별률 제고와 고순도 재활용 원료 생산을 위해 설비 고도화와 연구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안정적인 고품질 원료 공급을 통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대기업의 탄소배출권 확보와 재생원료 수요 확대라는 과제 역시 공동의 목표로 설정됐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정기적인 상생협의회를 통해 협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시장·기술 변화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1기 협약의 성과와 한계, 그 다음을 묻다”
행사에서 공유된 인사말과 축사는 대부분 지난 3년을 돌아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1기 협약 기간 동안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와 재활용 원료 구매 약속이 일정 부분 지켜졌고, 일부 기업은 시설자금 무이자 대여 등 지원도 이어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동시에 사모펀드의 무분별한 인수, 석유화학 업황 악화 등으로 기대했던 활발한 거래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는 반성도 함께 제기됐다.
국회 참석자들은 플라스틱 재활용업이 단순한 환경 산업이 아니라, 수많은 중소기업의 생계와 지역 기반을 떠받치는 현장 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상생협약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시장 질서를 바꾸는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원순환단체총연맹 “자원순환은 공공 인프라”
이날 행사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메시지는 한국자원순환단체총연맹의 인사말에서 나왔다. 총연맹은 이번 협약을 “갈등을 대화로 풀어낸 1기의 연장선”으로 평가하면서도, 지난 3년간 충분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현실을 분명히 짚었다. 특히 사모펀드의 시장 잠식이 자원순환 시장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중소기업 기반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구조적 문제로 지적했다.
총연맹은 자원순환 산업을 단순한 시장 영역이 아닌 국민의 참여와 세금으로 구축된 필수 공공 인프라로 규정했다. 탄소중립과 순환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이라는 인식이다. 이 시장이 투기 자본과 독과점 구조에 의해 왜곡될 경우, 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이에 따라 2기 상생협약은 “말이 아닌 성과로, 선언이 아닌 실행으로 증명돼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대기업은 고부가가치 분야에 집중하고, 중소기업은 기술 혁신과 설비 고도화를 통해 고품질 재생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 분담이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총연맹은 국회와 정부를 향해 자원순환 시장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사모펀드 독과점, EPR 제도 악용에 대한 엄정한 관리·감독도 요구했다.
시험대에 오른 ‘역할 분담’ 모델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은 지금 구조적 전환 국면에 놓여 있다. 탄소중립 목표, 재생원료 사용 의무 확대, 글로벌 탈플라스틱 정책 흐름은 재활용 원료의 품질과 안정적 공급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이번 상생협약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됐다.
다만 이 협약이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인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향후 3년간의 이행 과정에 달려 있다. 경쟁을 멈추고 역할을 나누겠다는 합의가 선언에 머물지 않고, 실제 투자·거래·시장 질서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회에서 시작된 이번 약속이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의 지속가능한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이제 현장의 시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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