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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가상공간에서 먼저 고장 내본 ESS, 현장 설치 전 위험 찾는다

-디지털 트윈으로 초당 23만개 데이터 분석해 열화·고장 예측
-개별 인증 넘어 시스템 전체 평가…중소기업 비용 부담은 과제

 

[환경포커스=전북 완주] 전북 완주 에너지저장연구센터에는 현실의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똑같이 움직이는 또 하나의 ESS가 가상공간에 구축돼 있었다. 실제 설비의 운전정보가 디지털 모형에 실시간으로 전달되면 가상의 ESS도 현실과 같은 상태로 움직인다.

 

현실의 ESS에 고의로 고장을 일으키거나 수년 동안 충·방전을 반복하며 결과를 기다릴 수는 없다. 연구센터는 이러한 제약을 디지털 트윈으로 보완한다. 가상공간에서 특정 부품의 상태와 운전조건을 바꿔보면서 설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고, 화재나 고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측한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디지털 트윈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ESS의 상태를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시스템이 관리하는 데이터는 초당 약 23만개에 이른다. 배터리 셀과 모듈, 전력변환장치(PCS),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동기화해 설비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본사의 ESS 통합관제시스템이 현재 가동 중인 설비에서 이상 신호를 찾아 현장 조치를 요구하는 체계라면, 연구센터는 한발 앞선 단계에 초점을 맞춘다.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당 설비가 6개월 뒤나 1년 뒤, 장기적으로는 5년 뒤 어떤 상태에 놓일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에는 통합제어와 가속열화, 배전계통, 설비고장 등 네 가지 시뮬레이션 기능이 우선 적용됐다. 실제 현장에서 한 차례씩 이뤄지는 충·방전을 가상공간에서 반복해 배터리의 성능 저하와 수명 변화를 분석하고, 배전계통에서 과부하나 설비 고장이 발생했을 때 주변 전력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살핀다.

 

다만 AI가 내놓은 예측값이 곧바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측 결과의 정확성을 높이려면 실제 현장 데이터와 지속해서 비교하고 검증해야 한다. 공사는 통합관제시스템에 연결된 약 2,400개 ESS 가운데 일부 현장을 선정해 디지털 트윈의 예측 결과와 실제 운전상태를 대조하고 있다.

 

연구센터의 또 다른 역할은 ESS를 구성하는 개별 제품이 아닌 시스템 전체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현재 배터리와 PCS 등 주요 장치는 각각의 기준에 따라 인증을 받는다. 그러나 인증받은 제품을 한데 모아 ESS로 구축했을 때 각 장치가 안정적으로 연동되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화재가 발생하면 배터리 제조사와 PCS 업체, 시스템 통합업체 사이에서 사고 원인을 둘러싼 책임 공방이 벌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센터에는 태양광발전설비와 12MWh 규모의 ESS 등이 구축돼 있다. 시험 대상 제품을 실제 계통과 연결해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면서 시스템 전체의 성능과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시험 과정에서 생산된 운전기록과 이상 정보는 평가보고서로 남는다. 제품이 현장에 설치된 뒤 1년, 2년이 지나 다시 확보한 데이터와 최초 기록을 비교하면 성능 저하와 이상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특히 자체 시험시설을 갖추기 어려운 중소기업에는 이러한 실증 기반이 필요하다. 새로 개발한 배터리나 PCS를 실제 ESS로 구성해 시험하려면 넓은 부지와 전력설비,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구센터에서는 중소기업이 개발한 제품을 태양광과 ESS에 연결해 성능과 안전성을 확인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사전에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이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배터리와 PCS가 각각 인증을 받은 뒤 이를 통합한 시스템을 다시 평가받으면 이중으로 비용을 부담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연구센터 관계자는 “대형 배터리 제조사들은 개별 제품뿐 아니라 통합된 시스템 전체의 성능을 확인받기를 원하는 수요가 있다”며 “중소기업은 안전성 평가에 투입할 여력이 크지 않은 만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수출을 지원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국내 발주처가 ESS를 설치할 때 연구센터의 시스템 단위 평가를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단계는 아니다. 평가 결과가 법정 인증이나 공공 발주의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은 것도 아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시험·평가시설이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활용되려면 평가기준의 공신력과 제도적 활용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해외시장에서는 배터리 단품을 넘어 컨테이너 형태의 ESS 전체에 대한 안전성 검증 요구가 강화되고 있다. 국내 시스템 단위 평가가 국제기준과 연결된다면 기업의 중복 부담을 줄이면서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다.

 

연구센터의 디지털 트윈은 가상공간에 사고를 재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얻은 예측이 현실의 안전을 얼마나 높이고 기업의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앞으로 확인해야 할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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