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포커스=필리핀 라구나] 사람에게 위협적인 곤충으로 알려진 말벌도 자연에서는 다양한 동물의 먹이가 되고, 또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 포식자로 생태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생태학교에서 소개돼 관심을 모았다.
경북대학교 응용생물학과 김재희 연구원은 최근 필리핀 로스바뇨스에서 열린 제5회 국제생태학교(International Ecology School)에서 '등검은말벌(Vespa velutina)의 천적에 대한 체계적 고찰과 국내 신규 포식 사례'를 주제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2026년 국제학술지 Journal of Hymenoptera Research에 게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등검은말벌은 중국 원산의 외래침입종으로 국내에서는 2003년 처음 확인된 이후 빠르게 확산하며 양봉산업과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등검은말벌을 단순히 제거 대상이 아닌 생태계 먹이사슬 속 하나의 구성원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했다.
연구팀은 세계 각국의 연구자료와 국내 현장조사를 종합 분석한 결과, 등검은말벌을 포식하는 17개 분류군을 확인했으며, 이 가운데 7종은 국내에서 새롭게 확인된 천적으로 보고했다. 오소리와 벌매를 비롯해 딱따구리류, 직박구리, 장수말벌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등검은말벌을 포식하는 사례를 확인했다.
특히 연구는 포식 방식을 ▲성충을 개별적으로 사냥하는 형태 ▲벌집을 직접 공격해 유충과 번데기까지 먹는 형태 ▲겨울철 활동이 끝난 벌집을 이용하는 형태 등으로 구분해 자연생태계가 침입외래종에 적응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발표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들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딱따구리는 겨울철 말벌집을 뚫어 먹이를 찾고, 직박구리는 벌집의 구멍을 넓혀 내부의 유충과 번데기를 먹는 행동이 확인됐다. 오소리는 배설물 분석을 통해 다수의 등검은말벌을 섭식한 사실이 확인됐으며, 장수말벌 역시 등검은말벌의 성충과 벌집을 공격하는 사례가 관찰됐다.
연구팀은 다만 이러한 천적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등검은말벌 개체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대신 여러 동물이 함께 포식 압력을 가하면서 초기 벌집 생존율과 개체군 유지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자연생태계를 활용한 통합적인 침입종 관리 전략 수립의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외래침입종을 단순히 방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 생태계가 새로운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국제생태학교 참가자들은 발표 후 침입외래종 관리와 생물다양성 보전, 자연 기반 생태관리 방안 등에 대해 활발한 의견을 나누며 기후변화 시대 생태계 적응 전략의 중요성을 공유했다.
환경포커스는 이번 국제생태학교 현장 보도에 이어 다음 호에서 등검은말벌 연구논문의 주요 내용과 생태학적 의미를 심층 분석해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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